the Letter from Dad(1966~1971) – Comment on Walk

the Letter from Dad(1966~1971) – Comment on Walk

the Letter from Dad(1966~1971)

사진 속의 편지들은 1966년부터 1971년까지 아버지가 베트남에 파견 근무하던 시절에 어머니에게 보내 온 편지들이다. 1966년 한국을 떠날 당시 아버지는 31살의 나이였고 서울에는 28살의 아내와 둘째인 나를 포함하여 세 딸이 남았다. 미군부대에서 전기 기술자로 근무하던 아버지는 서울에 집 한 채 마련 할 적금이 만기되면 돌아오마 약속하고 베트남 파견을 지원하여 떠났다. 1여 년 만에 집을 마련하였지만 한국을 오가며 몇 년을 더 근무하다 귀국하였다. 젊은 부부가 마련한 회기동 첫 집에는 많은 역사가 생겨났다. 언니는 유치원을 다녔고 막내 삼촌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셋째 삼촌은 운전을 배우러 다녔고 둘째 외삼촌은 양장 기술을 배우러 다녔다.무엇 보다 그 집에서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남동생이 태어났다.

젊은 부부의 편지 내용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 안부와 자식들의 교육과 형제들의 진로에 대한 의논들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집을 장만하는 과정과 살림을 장만하는 과정도 구체적이다. 아버지는 장남이었으며 어머니는 장녀이면서 형제 많은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부부는 시골에 부모님의 터가 있었지만 일찍부터 자식 교육과 형제 교육을 위해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1960년대의 다른 부모들과 다를 것 같지 않은 아버지 어머니 삶의 시대적 모습일 수 있지만   자꾸 낯 설고 불편해지는 부분이 있다. 갓 30을 넘긴 아버지와 20대 후반의 어머니 나이다. 이 글을 써 내려가기 무척 힘든 대목이기도 하다. 젊은 아버지의 편지는 늘 ‘해숙 엄마 보아요’ 로 시작한다. ‘해​숙’은 장녀인 언니 이름이다. 1970년 1월 남동생이 태어난 후로는 ‘진훈 엄마 보아요’ 로 바뀌었지만 맺음말은 언제나 ‘아빠로부터’ 이다. 아내에게 ‘당신이 그립소’라던가 ‘당신의 편지가 늦어 무척 서운하오’ 등의 표현이 있지만 애초부터 부모로 태어난 듯 편지에는 자식 중심의 호칭이다.
아버지는 남동생이 태어난 이듬해 영구 귀국하였다. 이후 부부는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마당에는 과실수를 심고 새와 토끼를 키웠다. 마당엔 커다란 개가 있었고 한 켠에는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아담한 집은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보내 온 살림들로 채워졌다. 특히 마루에는 아버지가 직접 만든 나무 테이블이 자리를 잡았는데 그 위에 전축과 녹음기가 있었다. 젊은 아버지는 영화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젊은 어머니는 늘 순종하며 남편의 보호를 받았다. 난 나무 테이블이 있는 마루를 특히 아름답게 기억하는데, 가끔 아버지는 자신의 발등 위에 어린 나의 발을 올려 전축에서 흘러 나오는 ‘패티 페이지’의 ‘아이 웬투 유어 웨딩’이라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언젠가 마당 넓은 집에서 아버지는 또 한국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이번에는 온 식구가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는 계획이다. 자식들의 선진 교육과 문화혜택을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두렵고 안주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꿈에 부풀었다. 아버지 나이 39세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먼 곳을 떠나기에는 몸이 아팠다. 아픈 몸을 고치고 떠나겠다고 했지만 젊은 아버지의 병은 생각보다 컸다. 아름다운 마루에 햇살이 가득했던 어느 봄날 오후, 나는 아버지의 손톱을 깎아드렸다. 다른 형제보다 애교가 많아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차지했던 나는 아버지의 머리를 빗기고 손톱을 다듬으며 보았던 미소가 마냥 즐거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젊은 아버지의 미소라 하기에는 너무 힘없고 슬픈 미소였다. 얼마 되지 않은 여름에 아버지는 먼 곳으로 떠났다. 온 가족이 함께 떠나자 부풀었던 꿈은 접은 채 기약도 없이 홀로 너무 먼 곳으로 떠난 것이다. 아버지 나이 42세이고 어머니 나이 39세였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곳에서는 아빠로부터 단 한 통의 편지도 오지 않았다. 

글을 쓰며 생각 해 본다. 동화책을 읽어주고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단다’’하며 책을 덮는 순간이 있듯이 그런 지점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님 영화처럼 마지막 자막의 흐름과 함께 남은 세월도 음악 속으로 묻히면 좋을 듯 하다.

세월은 흘러 어머니는 75세의 할머니가 되었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 4남매를 키우며 여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삶의 과정들이 있었다. 나도 그 사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머니는 순종하며 젊은 가장에게 보호 받던 여인으로 기억하기엔 세월의 흔적이 너무도 가혹하게 느껴질 만큼 주름은 깊고 몸은 이미 병들어 있다. 자식들은 광속의 세월을 넘어 젊은 부모 없이 나름 컸던 인물들처럼 어머니에겐 낯설고 따듯하지도 않다. 억척스럽게 4남매를 지켜 왔기에 늘 버티어 줄 것 같았던 몸은 이젠 고통의 육신으로 변한 듯 아픈 몸을 원망한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니는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보관하는 것이 힘에 부친다고 한다. 가끔은 그런 것들이 부질없고 귀찮다고도 한다. 

할머니가 되어가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진들을 정리하였다. 아버지가 사진을 좋아하였기에 양이 많기도 하였다. 같이 사진들을 보며 나 조차도 낯설었던 것은 사진 속 어머니의 남편은 너무도 젊고 밝은 모습이다. 사진을 정리하던 어머니는 전생의 기억들 같다고 혼잣말을 한다. 어느 날엔가는 아버지의 편지들을 정리하였다. 어머니의 독백처럼 전생에서 보내 온 듯한 아버지의 편지 봉투들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어머니의 모습과도 너무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낡은 편지 봉투에서 나온 편지들을 꺼내어 읽어 내려가는 순간 어머니는 다시 젊고 순종적이며 우직한 가장에게 보호 받는 아내이고 나도 젊은 부모에게 보호 받기만 했던 어린 아이로 돌아가게 되는 경험을 한다.

2010년 발표했던 사진 작업들도 손바닥만한 아버지의 낡은 영어 사전을 찍으며 시작되었다. 작업노트를 다시 들추어 본다.

사지속의 책들은 대부분 10대 보았던 사전과 우연히 발견된 아버지의 책들이다. 지금까지 나의 책장 어느 한 켠엔가 있어 준 것이 신기할 따름의 책들인 것이다. 오랜만의 조우에서 그들을 조용히 관찰하고 사색하며 보여지는 것들을 사진 속에 담았다. 그런 사진들에 애써 그 어떤 의도나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책을 보며 그러했듯이 책과 관계된 개인적 경험들 예컨대 책을 보는 버릇이나 기록하는 행위, 페이지 넘김, 보관하는 방식 등과 같은 물리적 요인들과 시간의 축적과 함께 내재된 기억의 단편들로 책 자체가 가지는 변이와 의미에 대하여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랄 뿐이다. 사실은 이마저도 필요치 않을 수 있다.”  

아버지의 오래 된 물건으로 시작된 사진 작업이지만 수작업으로 책을 만드는 나로서는 나름대로 의 해석을 가지고 담백하게 글을 써 내려갔던 기억이다.  이번 아버지의 편지 작업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힘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지난 작업을 정리하며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까지도 힘이 드는 것은 너무도 많은 부분에 중첩이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편지를 통하여 단순하게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워만 하기에는 나는 너무 많이 복잡하다. 나는 사진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던 젊은 아빠 같기도 하고 늙어 가는 엄마 같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속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봉투를 빠져 나온 사진 속 아버지의 편지는 봄 햇살 가득한 아름다운 마루에 대한 그리움과 교차되는 사물로 집중하고자 노력하였다. 집중하는 동안은 고요해지며 사물은 자체의 기능과 형태 혹은 소유자 등에서 무한히 확장됨을 경험한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한바탕 여행을 다녀 온듯한 느낌인데 시간과 공간이 무척 자유롭고 어느 사물이든 형태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는 그런 곳으로의 여행인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후로부터 편지는 더 이상 내게는 사물이 아닌 영속의 세월 속에서 가장 생명력이 긴 대변자로 남아 있음을 느낀다. 어느 날인가 또 누군가의 손길로 편지를 꺼내고 들추는 순간 편지는 다시 호흡할 것이며 그 또한 나름대로의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편지는 또 다시 안내자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제 사진 속 아빠로부터의 편지들을 본다. 또 다시 나의 그리움은 어느덧 산이 되고 이미 아버지가 살았던 세월보다 긴 세월을 지나오는 내 가슴은 그리운 바다를 향한다.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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